카사모정담란

정민의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김정섭 2 681 2004.09.09 08:49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배님의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저는 아직 정민의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민 교수가 태어난 충북 영동에는 '학산'이라 지명의 고을이 있습니다.
이곳이 저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책소개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는 우리 옛 한시와 그림 속에 담긴 새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새와 사람’, ‘새와 그림’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첫째 권은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새들과, 특별한 의미를 담고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새들의 이야기를 모았으며, 둘째 권 ‘새와 문화’에는 문화적 의미를 띤 새들을 따로 모았다. 1백 70여 수의 한시, 1백 80여 컷의 그림 자료, 30여 컷의 사진 자료와 문학, 회화, 조류학을 아우르는 해박한 해설이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새들의 세계를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책 속에서

“꿩은 맛이 좋다. 하지만 새장 속에 가둬 놓고 길들일 수가 없다. 선비는 임금에게 꼭 필요한 존재지만, 손아귀에 넣고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바른말로 임금을 보필하되, 굳은 지조를 지켜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정신을 꿩에 담아 폐백으로 바친다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바치는 폐백 하나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푸른 연못 따스한 봄 주름 비단 무늬 펴고
종일 짝져 잠시도 떨어지질 않는구나
미인에게 손쉽게 보여 주지 말려무나
잠시라도 낭군을 놓아 주려 않을 테니

봄날 물 불어 넘실대는 연못 위에 비단옷 곱게 차려입은 원앙 한 쌍이 하루 종일 물 위를 떠다니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저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여자에게 쉽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그녀도 사랑하는 님 곁을 결코 떠나려 들지 않겠기에 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정네들이 꼼짝없이 한 눈을 팔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산책

나는 이런 일에 감동받길 잘 한다.
이를테면 이 책의 서설에서 이미 나를 감동시키는 이런 대목.

도롱이꽃 풀빛과 뒤섞여 있네
백로가 시냇가로 내려앉았네
놀라서 날아갈까 열려가 되어
일어날까 다시금 가만 앉았지

“......도롱이를 입은 농부가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호미를 씻고 손발에 묻은 흙을 닦아내려고 냇가에서 고개를 숙이는데, 해오라기 한 마리가 도롱이를 풀더미로 알고 그 곁에 내려앉는다. 난처하다. 일어서자니 백로가 놀라겠고, 그대로 있자니 저 녀석은 아예 마음을 턱 놓고 몇 시간이고 버틸 기세다. 일어설까? 아니, 조금만 더 있어 보자.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도롱이도 빗물에 젖어만 간다. 마침내 자옥한 안개 속에 백로도 도롱이도 지워져간다.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정경이다. 미물인 새 한 마리 가슴 철렁 내려앉을까봐 빗속에 기다려 준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인간의 마음과 하는 일이 아름다워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은 참 행복한 경험이다. 미물인 새 한 마리 가슴 철렁 내려앉을까봐 도롱이를 적셔가며 빗속에 기다려 주는 하염없는 그런 마음. 생각해 보면 인간의 마음자리라는 게 본시는 그런 것이었을 터, 아직 훼손되지 않은 옛 사람들의 옛 글을 읽는 시간은 그래서 언제나 행복하다.

마음 여윈 현대 독자들을 위해 옛 글 속의 자양(滋養)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일가를 이루어가는 정민 교수의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는 일단 그 점에서 가히 성찬이라 할 만하다. 책 제목이 말해 주듯, 이 책에서 그의 탐구는 문학을 아우르면서 나아가 그림과 조류학에까지 뻗쳐 있으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새 그림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눈의 사치에다, 새에 대해 이전에 몰랐던 사실들을 배워 아는 정신의 행복까지 더해진 책읽기의 재미가 골골이 가경(佳境)이다.

새와 사람, 새와 그림, 새와 문화--의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모두 36종의 새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한시와 그림 속에 나오는 다양한 새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 삶의 다채로운 층위들을 새롭게 읽어 보고자 하는, ‘인문학 가로지르기’의 한 시도로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백문(百聞)보다는 일견(一見)이라고, 다시 한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한 마리 학(獨鶴)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은 찬데 한 다리(一足)를 들고 서 있네
참대(苦竹)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온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추운 밤이다. 외다리로 학 한 마리가 서 있다. 고개를 들고 먼 데를 바라본다. 가을 바람이 참대숲에서 불어온다. 이슬이 그 몸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꼼짝 하지 않는다. ‘독학’과 ‘일족’에서 그 외로운 형국이 드러났다. 또 ‘고죽’은 참대의 이름일 뿐인데, 찬 이슬을 맞으며 홀로 잠들지 못하는 학의 ‘괴로운’ 심정을 환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발이 시린 추위 속에서도 학은 이슬로 제 몸을 씻으며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시에 곁들여진 그림--어둡고 추운 밤을 외다리로 버티어 서서 고개 돌려 먼 데를 바라보는 한 마리 학의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어떤 현실의 질곡과 간난 속에서도 초연히 꺾이지 않는’ 학의 고독한 의지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공감이 일어난다. 그렇듯 옛 사람들은 ‘새에게서 새를 보기보다는 인간을 보았’고, ‘새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반추’하였던 것이니, 날이 밝으면 창가에 와서 지저귈 참새며 까치 한 마리도 나는 이제까지와 아주 많이 다른 마음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저자소개

정민 교수는 1960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문학 속의 무궁무진한 컨텐츠’를 오늘에 유용한 살아 있는 정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저서로는 『한시 미학 산책』『정민 선생님이 들려 주는 한시 이야기』『비슷한 것은 가짜다』『마음을 비우는 지혜』『내가 사랑하는 삶』『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돌 위에 새긴 생각』『책 읽는 소리』『초월의 상상』『목릉문단과 석주 권필』『조선 후기 고문론 연구』 등이 있다.

Comments

권영우 2004.09.09 09:52
  김정섭님!
잘 읽어 보았습니다.
새 사육을 하면서 눈높이를 높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김갑종 2004.09.09 10:53
  어쩌면 새들의 뿌리를 찿아 낼려는 님의 의지가 보여집니다.
선인들은 새 한마리로 삶의 지표를 정하는 여유로움도 있었건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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