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축의금 13,000원

김기곤 9 711 2005.12.29 18:44
'축의금13,000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옮겨온 글 -

 

......................................................................................................

 

좋은글 혼자 읽기 아까워 퍼왔읍니다.
가슴이 찡 하네요,,,

 
 
 
 
 
 
 

 

Comments

권영우 2005.12.29 20:12
  그런 친구가 있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라면 그 돈은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그 사과는 목이 메어 먹지도 못하겠군요.
어렸을 적 친구에게 연락이나 해 봐야겠습니다.
배락현 2005.12.29 22:53
  글이란게 사람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니...
가슴 뭉클합니다.
한찬조 2005.12.30 05:03
  축의금 13,000$<13,000원
......

가슴찡한 이야기로 새벽을 엽니다.
강현빈 2005.12.30 07:37
  글의 담겨있는 훈훈한 정이
우리 회원들 가슴에 옮겨져
내년에는 더욱 정다운 이야기가 오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수영 2005.12.30 09:41
  대단한 글솜씨네요...

그같은 상황이 바로 와 닿는군요......
김용만 2005.12.30 10:49
  친구란 정말 좋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글이네요..
연말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류청 2005.12.30 21:22
  정말 가슴이 와닿는 글귀입니다.
친구가있으면 나의 또다른 인생을 가진다는 말이
문득 생각이 많이나네요^^*
최병옥 2005.12.31 11:47
  옛 생각이 나는군요 군 제대후 무엇이든하면 된다는생각을가지고 몇일의 육체적 노동
댓가로 받은돈으로 리어카를준비하여 장사를 시작한 첫날 알타리무우를 싫고 나오다
그만 알타리란말을 잃어 작은무우 사라고 소리치던일등....
옛 생각에 눈에 물이 고이네요
정형숙 2006.01.01 02:00
  글이 나를 또 울리는군요!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쓸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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