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황당하고도 씁쓸한 일

허정수 11 766 2004.08.06 10:16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술에 약간 취한 두 분이 지하철을

타시더니, 한분은 다른 한분을 데려다주겠다 하고, 다른 한분은 괜찮다고, 혼자 가겠다고 그러시더군요. 두분이서

실랑이를 벌이시는통에 한분은 저한테 넘어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결국엔 한분은 내리시고 나머지 한분만 제 옆자리에

앉아서 가게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분께서 저한테 천원짜리를 보여주시며, 전화 한통만 쓰고 싶다고 해서 그냥 쓰시라고

했습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듯,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고, 술에 많이 취한 듯 보였습니다.

친구분에게 전화를 하시는 것 같았는데, 전화를 하시다가 통곡을 하시더군요. 듣고 있기 민망해서 괜시리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는 둥 마는 둥....그런데 갑자기 절 바꿔주시더군요. 친구분이 저하고 통화하고 싶다시면서..

친구분왈: 오늘 같이 술 많이 드셨습니까?
저왈: 오늘 처음 뵙는 분입니다.
친구분왈: 아...그렇습니까...실례지만 친구가 어디로 간다고 합니까?
저왈: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 회사가 있는 종각에 가신다고 하시네요.
친구분왈: 친구좀 바꿔주시겠습니까??

다시 그 분을 바꿔드리고, 통화가 끝났는지 저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시더군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데

그분께서 저한테 "종각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왈: 1호선 타고 계속 가시면 됩니다.(술에 정말 취하셨구나)

그분왈: 네

그러고는 주무시더군요.

아무래도 저대로 두면 1호선 타고 끝까지 가겠다 싶고, 요즘 퍽치기도 많은 지라, 제가 데려다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제가 같이 가드리겠다고 그러니, 또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다 노량진 역에서 오바이트를 하신다고 갑자기 뛰어내리셨고, 전 급한 마음에 그분 가방과 제 가방을 들고 따라서

내렸답니다. 지하철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머리를 내밀고 오바이트를 하시길래 다시 위치조정을 해드리고....

음료수를 뽑아서 그분께 마시라도 드렸답니다. 어느 정도 진정되신 건 같아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그분이 전화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다시 제 핸드폰을 빌려드렸습니다. 아까 그 친구분에게 전화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다시 저를 바꿔주시더군요.

친구분왈: 지금 어디십니까??
저왈: 노량진입니다.
친구분왈: 제가 지금 수원에서 가고 있는데 조금 같이 계셔주실수 있습니까?
저왈: .....예 그러겠습니다. 아니면 여기서 기다리기보다는 저도 다시 이분 모시고 수원방향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다시 모시고, 수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다시 탔답니다. 가는 중에 그분께서 수첩을 잃어버리셨다고 해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다시 수첩을 찾고...그러다가 다시 오바이트 하신다고 내리고...그분 가방 매고, 제 가방 매고,

그분 수첩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분 부축해드리면서...그러면서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이 2시간.....

마침내 친구분을 만나서...그분이랑, 그분의 가방이랑 수첩이랑 전해드리고, 돌아왔답니다. 고마우시다면서 음료수를 뽑

아주시더군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데...좀 씁쓸했습니다. 그분께서 술에 취해 친구분과 통화하시면서 '세상이 날 괴롭혀'라고 울부짖으

셨는데...그 말이 계속 남더군요...요즘 워낙 경기도 안 좋다보니...사람 살기도 정말 힘들어지는가 봅니다. 저야 아직...모

르지만....

혹시 요즘 힘든 일 있으시더라도 회원님들 모두 힘내세요.^^



Comments

김용인 2004.08.06 11:54
  허정수님 참으로 복 받을 일을 하셨군요.
두시간이나 술취한 사람의 뒷바라지를 해주셨으니 마음은 씁쓸하실지 몰라도
보호자에게 인계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허정수님의 뒷 모습이 모든이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보였을것으로 생각합니다.
권영우 2004.08.06 16:42
  날이 무덥고 여러가지로 어렵다보니 별일이 다 있나봅니다.
그래도 허정수님의 따스한 마음으로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꼈을 그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을 하셨군요.
정말로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강현빈 2004.08.06 17:50
  술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은 행동입니다
복 받으실 것입니다
최상식 2004.08.06 20:23
    카사모를 알게 되서 참 감사하고 다행입니다.  ^^
김학성 2004.08.06 21:32
  허정수님은~
카사모에서 글만 많이 쓰시는게 아니라...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군요.
복 많이 받으시기를 앙망하옵나이다.
박진아 2004.08.06 22:33
  허정수님 너무 착하십니다~~~
복받으세요.  꼭 !!!
세상에 이리도 좋은 분이 있을까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세상이 날 괴롭혀.... 이말은 ... 너무 가슴아픕니다...  >.<
김정섭 2004.08.07 00:22
  허정수님! 착한 분이십니다.
저는 솔직히 아리랑치기배에게 몇번 당한 사람으로서
허정수님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한층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허정수 형제님과 함께
또한 우리와 함께

(허정수 님! 술이 고프거든 전화하면 길음동 시장에서 한 잔 건하게 살 것이니
마음이 아플 때 연락 바랍니다)
이준형 2004.08.07 09:37
  대단하십니다. 보통분들같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정수훈 2004.08.07 13:48
  좋은일 하셨네요.

 그래도 좋은세상인것같습니다.

회원님들 행복하세요~~~
이덕수 2004.08.08 22:08
  진짜 좋은 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도 조심해서 하셔야 합니다
전에 여수의 원영환님이 쓰셧던 글 내용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문명미 2004.08.09 12:19
  좋은일 하시고 정말 복받을껴 입니다..
세상살기 힘들어 울고 싶을때 함께 얘기할 친구가 있는 그분도 어찌보면 행복한 분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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