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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가지고 살자" - 카사모에 처음올렸던 글

박동준 7 719 2005.11.13 05:11
이등은 기억되지 않는가.

지난 겨울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차들이 기어 다녔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차를 몰고 가는데 뒤에 따라오는 차가 불빛을 번쩍거리고 클락션을 울려대면서 빨리가라고 재촉하는 경우를 몇번 당했다.
옆에 피할 길도 없는데. 화가 무척 났다. 나는 그런다고 겁나서 빨리 달리는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더 천천히 가지만
맘 약한 여자들이 놀라고 당황해서 서두르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겁많은 여자들은 실제로 뒤에서 압력을 가하면 놀라서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폭설이 쏟아지는 길에서 그렇게 서둘러 가야하는 이유가 뭔지 잘모르겠지만 자기 목숨 보다 더 소중하고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는 그렇게 급하지가 않았던 것 같다.
음악도 느리고 말투도 느리고 모든 문화가 느렸었다.
그러던 게 언제부터인지 급해지고 참을성이 부족해진 것 같다.
급하다는 것은 뭔가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급해지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 부터인 것 같다.
그당시 약삭빠르게 일본인들에게 붙은 자들이 졸지에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고 마음들이 급해지기 시작하다가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재빨리 불하받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급해진 것 같다.

그후 박정권 때 개발 바람이 불면서 정부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마냥 기다리다가는 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는 걸 터득하고 남보다 일초라도 빨리 가야한다는 절박한 조급증에 빠지게 된 것 같다.
게다가 군대에서도 선착순으로 돌리고, 국민들을 열심히 일하게 하려고 성공사례들을 언론에 보도하여
모두들 앞만 보고 미친듯이 달려가게 만들었다.

한때는 모든 국민들의 우상이었던 김우중씨가 잠도 안자고 간부회의를 새벽 네시, 다섯시에 한다고 하며
그렇게 부지런해서 돈을 벌게 된 것이라고 모든 언론에 나왔었다. 그 뒤로 다른 기업들도 따라한다고 꼭두 새벽에 간부회의들을 했었다.
그 김우중씨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모르긴 몰라도 인생무상을 되새기며 뭘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나 하고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재벌 그룹이 각 신문에 전면 광고로 "이등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를 올린 적이 있다.
그 그룹은 무슨 사업을 해도 오로지 일등만을 해야한다고 직원들을 다그친다.
그 광고를 보면서 나는 고스톱을 칠 때 우리가 늘 하는 말 "고스톱에는 이등은 없다" 라는 말을 떠올렸다.

오로지 일등만이 기억되고 일등만이 모든 걸 독식한다면 모두가 다 일등이 되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일등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면 온갖 편법과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일등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것이다.
그리고 일등 근처에 가기도 힘든 사람들은 아예 모든 것 포기하고 자포자기가 되기 쉽다.

모든 언론에서 부지런히 서둘러서 성공한 사례들을 보도하고 선점효과니 뭐니하는 얘기에다가
광고까지 일등주의를 보도하는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느긋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폭설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피할 길도 없는 도로에서 빨리가라고 부추기는 일까지 벌어진다.
동남아 나라들에 가면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나 가게에서는 한국말 중 "빨리빨리"라는 말을 모르는 곳이 없다.

그렇게 서두름으로 해서 우리가 손해보는 것이 얼마나 될까?
최단 시간에 건설했다는 경부고속도로를 나중에 보수 공사하느라고 든 돈이 건설비의 몇배가 된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홍콩의 한 회사가 한 15평 정도 되는 사무실의 인테리어 공사를 한달 정도 걸려서 한다고 해서
도대체 얼마나 굉장하게 하길래 그런가 하고 잘 이해를 못하였었다.
나중에 그 사무실을 가보고 나서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소박한데 다시 한번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길어야 삼일이면 끝날 공사였었다.
그 뒤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뒤에야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깨달았다.

서두르지 말자. 인생에서 일등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등이 못되서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죽은 다음에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거나 말거나 죽은 나한테 무슨 큰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저 살아있는 동안에 내 자신에게 충실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앞만 보고 죽어라고 달리지 말고 천천히 달리면서 창 밖의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살자.

아무리 갈길이 급하더라도 길가의 구덩이에 빠진 차를 발견하면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차를 밀어주고 가자.

내마음을 바꾸면 별안간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진다.

세상은 넓고 시간은 많다.
여유를 가지고 살자.                                                      2001. 8. 29    - 박 동 준 -

Comments

김창록 2005.11.13 05:29
  몇번 곤두박질 치고나니 와 닿는 말씀 감사합니다.
정기상 2005.11.13 10:58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요즘 들어 더 와닿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박상태 2005.11.13 14:11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하는데..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바빠지고 조급증에.. 강박증까지..

한 숨 돌리면서... 여유를 되찾아야겠지요..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내 머리속은 "지금 다른 사람은..." 이란 생각이 떠오르니.. 병입니다.
전신권 2005.11.13 16:02
  시골사는 것이 그래 좋을 때가 많지요.
지금은 서울에 학회차 왔는데 마음이 바빠지네요.
온 김에 볼 곳도, 만날 사람도 많은데 너무 바빠
만날 수가 없네요. 간만에 양재동 꽃시장을 여유롭게
다녀왔고 애들 집에 놓을 포인세티아 한 화분과
게발선인장 그리고 부레옥잠 몇 포기도 사왔습니다.

권영우 2005.11.13 16:37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라!'란 말이 교실에서만 존재하는 듯한 사회풍조가 되버린 듯합니다.
함께 어울려 협동하기 보다는 밟고 이여야 살아남는다는 이기심이 무서울 뿐이죠.
카나리아를 사육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네요.
가슴을 활짝 펴고 2등에게도 아니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네요.

어제는 밭에가서 무와 알타리 뽑아왔고,
오늘은 카나리아와 앵무새에게 줄 모이를 잔뜩 사왔답니다.
내년 봄까지는 모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래서그런지 더 풍요롭습니다.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이 되길 빕니다.
김갑종 2005.11.14 09:21
  그래도 뻐ㅏㄹ리 !빨리 문화로 이만큼 성장을 했지요.
모두 다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버린 민족인걸 어떻게합니까?
빨리빨리를 잘 이용하면 꽤 좋은 문화로 안착되련만....
3초만 참고 기다리는 민족성이 되면 일등 국민이 될터인데....쩝
이응수 2005.11.14 09:28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신 님께 !! 항상 2등은 소용이 없는것을!!
 일등만을 따지는 세상를 누가 만들었을 까 보다는 2등이 소용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우치고<?>
 < 모든 삶의 전체가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나니 세상이 다시 넓게 보이는것은
 저 만의 아집은 결코 아닌것 같습니다. 살아온 세월을 다시 되 짚어 꼼꼼히 살펴보면 누가 알아
 주어서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철저한 삶의 기본이 아닌가 하는 좁은 생각을 하게 되는
 좋은 아침입니다. 3등에게도 넉넉하게 보아주며 박수 치는 그런 세상이 되는날 까지!!
 좋은 글 갑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대전 왕 초보 이 응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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