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탱자 이파리

김갑종 5 703 2006.10.27 22:31
국민학교 2학년 5반 담임은 문병렬(작고)선생님이셨고 주로 교생실습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쳐 주셨다.
2학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날 첫 시간이 끝나자 교생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전부 다 책상 위에
끓어 앉히고 눈 감기고 탱자 이파리 하나씩을 입에 물리고"담임선생님 돈을 훔쳐간 학생은
탱자 이파리가 커질테니 만약 탱자 이파리를 갉아 먹는 학생은 절대 용서 못한다"고 어름장을 놓았다.
씁쓰럼한 탱자 이파리에 침이 질질 흐르고 그 물기로 인해서 탱자 이파리가 쑥쑥 자라났다.
간이 콩알만한 나는 쥐새끼처럼 앞니로 탱자 이파리를 살살 갉아 먹었다.
나를 비롯해서  낌새가 이상하거나 잎을 갉아 먹은 학생은 9명이나 되었고 골마루로 쫓겨났다.
교생선생님은  새 탱자이파리를 물리고 "이번에도 또 탱자이파리를 갉아 먹는 학생은 교무실로 끌고
갈끼다"며 더욱 무섭게 우리들에게 겁을 주었다.

눈을 감고 생각하니 왜 그리도 많은 죄를 지었는지? 엄마 아빠 말 안 듣고 애먹인 일, 남의 밭에 수박 참외
서리한 일,길 한가운데 똥을 싸 두는 일, 뒷동산에 불지른 일, 가수나들 통시 문 열어 버린 일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못된 짓들이 생각키울 때마다 탱자 이파리는 푹푹 컸다. 그래서 자꾸 갉아 먹었다.
끝에 남은 남은 탱자이파리는 결국 바늘귀처럼 생겼다. 나보다 싸움질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은협이 놈하고
단둘이 교무실로 끌려갔다.
교감선생님은 상상외로 부드럽게 둘을 대했다. 자신도 내만할 때에 선생님 돈도 훔쳐 봤다면서
까만 무명 보재기 책가방을 뒤졌지만  돈이 없어서 그러니 혹시 딴데 숨겼느냐면서 능글능글한 귓속말에
앙~하고 울어 버렸다."지는예 남의 수박참외는 따다 묵었어도 선생님 돈은 진짜 몰라예"하며
콧물 눈물을 팔꿈치 옷소매로 딲아내며 보니 은협이놈도 내 따라서 지가 아니라면서 울어 제끼며 극구 부인하고 있었다.
빌어묵을 놈이 훔쳤으면 훔쳤다고 하지 지가 아니라고 우기면 우얄낀고? 나중 교무실 나가기만 하면 
때려 쥑이삘끼라... 둘은 두손 들고 서로 노려보며 한나절을 교무실에 끓어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에 선주, 난이, 숙연이 누나들이  교무실 안의 동정을 살피는 게 보였다.
나는 뛰쳐 나가 누나한테 메달려 울고 싶었다.그러나 엄마 아빠가 알면 집에서 쫓겨 날 일이 걱정되어 머리를 아래로
 더 쳐박았다.누나가 집에 알리지 못하도록 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꿈인가 싶어 꼬집어 봐도 나는 여지없는 도독놈이었다.

오후 수업이 시작될 무렵 우리반 석주 엄마가 교무실에 나타났다.
가장 먼저 등교한 석주는 화장실 간 담임선생님의 양복에서 월급봉투를 꺼내어 시장통을 돌아 다니면서 먹고 싶은걸
다 사 먹다가 배가 터져 버렸다고 한다. 병원에 수술시키다가 보니 바지 주머니에 돈이 가득 들어 있어서 학교로
급히 달려 오신 길이라고 했다.
내 죄가 누명을 벗는 설움보다  교무실이 터지도록 통곡을 했다.
교생선생도 담임선생도 교감선생도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들이라고 뼈아프게 속을 봤기 때문이었다.
초등서 대학원까지 선생께 질문을 단 한번도 안했고 언제나 거리를 두고 댕겼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 꽃 선물이라도 보낼 스승이 내겐 아무도 없다.
탱자 이파리!
탱자 가시보다 더 아프게 내 가슴 한복판에 깊숙히 박혀 있다.


                                                                  김갑종의 斷想에서

Comments

김갑종 2006.10.27 22:46
  전시회는 축제일인데 웬 50년전의 이바구이냐구요?
축제일이나 기쁜 일에는 언제나 옛날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념하는 마음으로 단상 700편 중에서 2편을 소개합니다.
1편은 "치자 꽃" 보신 기억이 나실겁니다.
정연석 2006.10.27 23:05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을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일은 안당해보았지만, 선생님께 질문안하고 항상 거리를 두고 댕긴것은 같네요...^^

1편 '치자꽃'을 읽고나서, 저희 아버지는 지금 제곁에 계시지만,
후일 어떤향으로 제곁에 남아계실까 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단상이 총 700편이나 되신다니 기회가 있으실때 한편씩 소개해주십시요...^^
강태진 2006.10.28 06:52
  마음아픈 옛이야기가
읽는사람에게도 옛생각을 불러일으켜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맛깔스러운 글들.....
자주 접할수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영우 2006.10.28 07:45
  즐거운 추억이셨네요. ^-^
요즈음 학교는 큰 추억을 만들지 못합니다.
힘들었던 옛날이 가끔씩은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요?
행사장에서 뵙겠습니다.
정병각 2006.10.30 10:49
  흘러간 추억들을 회상하신 글이 너무 좋습니다.
700편이나 되신다면 혹시 책으로 내셨나요?
좋은 수필집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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