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그 여자 2

정병각 5 747 2007.02.02 17:51
                그  女 子. 2

                                                        정 병 각

늘어뜨린 생머리와
거울 속을 드나들던 검정색 긴 드레스에 갇힌
잘록한 허리가
가끔씩 나를 힐끔거리게 했던
여자
 
머리 숱 듬성듬성한 중년들 속마음
어쩌면 그리도 잘 아는지
아무 말 안하고 자리에 턱 앉기만 해도
귀밑머리 웃자란 추억만
살짝살짝 다듬어 주던
여자
 
어린 아들 데리고 처음 갔을 때
“아이고, 마 판박이네 판박이”하며
호들갑 떨던 여자
 
가끔은,
“와 이리 새치가 많아졌어예”하며
가슴 시린 불혹을 위로해 주던
여자

키 큰 은행나무 노오란 잎들이
세상과 연결된 조그마한 창(窓)마저
꽝꽝 막아버린
문구사 위층 그 여자의 집

오늘도 그 여자
대걸레 자루 하나 버릇처럼 쓰윽 뽑아 타닥타닥,
창밖 파란 하늘 빼꼼이 열어젖히곤
삐쭉삐쭉 솟아나는 삶의 애환들 새각새각,
날렵한 가위질로 잘라내고 있다

곱게 빗질된 햇살이
곱게 채색된 계절이
탁 트인 창 너머로 환하게 쏟아진다

Comments

권영우 2007.02.02 17:59
  느낌이 다른 그여자네요.
그여인....
정병각님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사시는가 봅니다.
자꾸만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하지 말라니까요...... ^-^
김성기 2007.02.02 19:07
  흠~~~
정병각님이 퇴근후에 머 하시는지 뒷조사 들어갑니다.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아시죠?
그여자의 또다른 매력에 살포시 젖어보는 카미킴 입니다.. *^^

아 근데!!
권영우님 께서는 무슨 아련한 추억이라도?
아니..아직도 잊지못할 그여인 이라도??
나 이러다가 우리식구(카사모)들 모두 뒷조사 하러 다니는거 아닐지 몰라.....
박상태 2007.02.02 23:35
  가을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듯 합니다.^^

오늘 모임을 잘 하셨지요? ^^
홍상호 2007.02.03 09:42
  심상 신인상을 받으신 정병각님이 올려주시는 양식덕분으로

삶속에 쪼그라든 마음 한구석이 쭈욱~ 펴지는 것 같습니다..
 
정병각 2007.02.03 17:44
  이크! 오 마이갓,,,,,,
그러나 '그 여자'에 대한 괜한 오해들은 마십시오....ㅎㅎㅎ
소재가 된 인물은 우리동네 미용실 아줌마입니다.
막내아들녀석을 데리고 자주 가는 곳이지요,
그 여자가 창문 열고 은행나무 가지를 두들기는 모습이 너무 멋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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