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카나리아와 참새

이장현 4 547 2003.10.25 11:03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분께서 부탁한 카나리아를 몇 마리 맡아 기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새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상당히 많이 길렀더랬는데, 요즘 그 철늦은 복습을 하는 모양입니다.

신장 위에 새장을 올려놓으면서 생각했습니다.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새를 잘 기른다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라는 소리는 곧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새를 많이 죽여봤다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라는 말과 통합니다. 새장 안의 작은 새는 작지만/작아도 한 세상- 한 생명을 살피는 일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거든요. 더군다나 모든 일은 trial & error로 배우는 것이라던가요? 피아니스트가 악보의 한 음을 제대로 짚기 위해 수많은 연습과 무수한 삑사리를 겪어야 하는 것처럼,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저 사람 새 잘 기른다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라는 말은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저 인간 새 숱하게 잡더니 이제사 리(理)가 좀 트인 모양이다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라는 말에 다름이 아닙니다. 음반을 모으거나 사람을 사귀는 일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뭐든 느리게 배우는 편이라 그 차곡차곡 쌓이는 error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좌우간 그렇게 몇 년 취미를 붙이던 새는 제가 드나들던 신촌의 조류商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서게 되면서 교류를 잃었고, 또 이렇게저렇게 삭막한 고등학생의 일상에 치이면서 그 후 십 년 가까이 집안에 새털을 날리지 않는 것으로 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직 인연이 끊긴 것은 아니었는지, 어찌어찌 이번에는 다시 카나리아를 몇 마리 기르게 되었네요.

cana.jpg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

..해서 요즘은 이 짹짹거리는 놈들 조석으로 모이통 채워주고 물 갈아주는 일이 다시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카나리아의 모이에는 좁쌀(메조)과 들깨, 카나리아 시드를 메인디쉬로 피와 유채씨, 약간의 수수, 청채(靑菜)와 난황(卵黃)이 섞입니다. 모이를 주면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카나리아도 먹는 것이 절반, 부리로 헤쳐 흩어 버리는 것이 절반입니다. 게다가 들깨 따위의 기름진 씨앗을 좋아할 뿐이어서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그 맛이 가난한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 좁쌀은 마치 편식하는 아이 밥에서 콩 골라내듯 튀겨버립니다.

새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to err is human, to forgive is divine- 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주어가 바뀌게 됩니다--;) 청소는 또 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얼마간 새장을 청소하다가, 정말 우연하게 꼭 새장 모이통을 창 밖에 털 때면 동네 참새들이 몰려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 참새가 드문 동네는 아니지만 창가에 참새가 종종거리며 앉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hh.jpg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

(드문드문 낱알이 보이는 모이통쓰레기 사진)


찬찬히 살펴보니 날아든 참새들은 제가 창 밖으로 털어 버리는 카나리아 밥찌끄레기- 낱알 알갱이를 쪼아먹더군요. 이런.
새장 청소 시간이 바로 참새 급식 시간, 아, 내가 쓰레기라고 쓸어버린 먼지 중에서 참새는 그 먹을 것을 찾는구나.

마가복음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7:29)

카나리아가 먹다 만 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헐은 밥3696021894_WCsBIaLG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3696021894_5fprAhJF_e55a7ba585d867ba98089fd5ca6ce42073aa76a1.'을 얻어먹는 참새,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 예수께 은혜를 구하는 불쌍한 헬라 여인..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세상에는 힘없고 약한 이웃,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자선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이 있습니다. 참새처럼 땡글땡글 까만 눈알만 굴리고 있는.

* 얼마전 다른 동호회에 올렸던 글인데(그래서 카나리아를 약간 설명하듯 적었습니다) 어쨌거나 카나리아가
주인공이길래 카사모에도 올려봅니다^^

Comments

김정섭 2003.10.26 06:33
  매우 감동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박상태 2003.10.26 09:19
  글이 참 좋습니다.^^  잘 읽었구요, 이런 좋은 글을 자주 뵐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정형숙 2003.10.26 13:58
  글도 참 좋지만 카들도 너무 이쁘네요...

똑같은 색깔이 4 마리나 되네요!????
박정용 2003.10.27 19:33
  저는 앞마당에서 선풍기를켜두고 카나리아 모이를 까부립니다.
껍질과 함께 알갱이도 제법많이 날아갑니다.
좀있으면 참새가 떼로몰려옵니다.
한참 기다렸다가 마당을 쓸어버립니다. 그냥버리기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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