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아찔했던 휴일과 파이프의 모성애

정병각 13 586 2008.04.07 12:02

봄비가 전국적으로 내릴 것이라던 며칠 전의 예보와는 달리 휴일인 일요일의 날씨는 너무 좋았습니다.
곳곳에 벚꽃이 만개해 축제들이 즐비했고, 꽃나들이 나선 인파로 주요 관광지들은 북새통을 이루었지요.

저도 모처럼 벚꽃이 만개한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다녀왔지요.
이미 보름 전부터 예정돼 있던 영어학습 모임의 초중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문화유적지 답사의 안내를 맡았던 탓에
꼼짝없이 하루를 빼앗긴 거지요.
모두 25명이 참가한 이번 답사에서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이끌었던 56대 왕들 가운데 통일신라의 초석을 놓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대의 주요 왕릉 7군데를 돌아보는 스케쥴로 진행했습니다.
오전 9시30분부터 진행한 답사는 오후 5시경 종료됐는데,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은 차가 너무도 밀려
2시간 가까이나 소요됐습니다.

아,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습관적으로 베란다 문을 열고 불을 켰는데, 육추 9일째인 파이프 부부가 모두
횃대와 모이통 근처에 앉아있더군요. 수컷은 당연 그렇다치고 암컷은 밤이 되면 둥지에 들어가 새끼들을
품어주곤 했었는데 말이지요. 

이상하다 싶어 바라보는데, 암컷이 모이통 옆에서 날아가질 못하고 그 자리에서 푸드덕 거리기만.....
왠일인가 싶어 다가가보니 링이 채워진 다리 한쪽이 새장 문과 문틀 사이의 틈에 끼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링만 없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링 때문에 하마터면 육추중인 새를 잡을 뻔 했지요.

새장 문틈을 벌려 간신히 녀석을 구해냈는데, 녀석은 절뚝거리며 횃대로 옮겨 앉더니 내내 웅크리고만 있더군요.
가끔씩 원망스러운지 다리에 끼워있는 링을 물어뜯기만 하고...
다행히 잡아서 관찰해보니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더군요.

하루종일 그렇게 창살에 끼어 푸드덕거렸는지, 아니면 오후 몇 시간 동안만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동안 새끼들이 먹이를 못 얻어먹었을 것 같아 신경이 바짝 쓰이더군요. 그
래서 밤늦은 시간이지만 새끼들이 걱정돼 2시간 이상 불을 켜주었는데 암컷은 옴짝도 못하고
암컷이 그렇게 된 데 놀랐는지 수컷도 덩달아 새끼들을 돌보지 않더군요.

부랴부랴 에그푸드로 이유식을 만들어 급이를 하려고 해봤지만 새끼들이 모이를 조르다가도 사람만 다가가면
이제 조금 컸다고 고개를 처박고 경계를 하는 통에 먹이지 못했습니다.
안절부절하다 어쩔 수없이 불을 끄고 밤을 보낸 뒤 오늘 새벽 일어나 일찌감치 불을 켜주었는데도
어미들의 행동은 마찬가지,... 배가 고플텐데도 녀석들은 끝까지 이유식을 받아먹지도 않고...

아, 링까지 채우고 이제 절반 이상 다 키워놨는데 잘못하면 낙조시키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쫘악 가라앉더군요.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하고 출근하려다가 마지막으로 베란다를 한번 나가보니 절뚝거리는 암컷이 둥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모이를 먹이고 있더군요. 휴,,,, 이제는 살겠구나..

창틀에 끼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푸드덕대던 녀석, 아직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텐데
그래도 제 자식이라고 거둬 먹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눈물겹도록 이쁘던지..

반면, 암컷이 그 지경이면 암컷 대신 더 열심히 먹이를 먹여줘야 할 수컷은 새끼는 거들떠보지도 않음은 물론,
오히려 틈만 나면 암컷을 겁탈하려고만 나대는 데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사고발생 전까지는 수컷도 새끼들을 잘 돌봤었는데 왜 그런건지.. 수컷도 너무나 놀랐던 탓인지...

어쨌든 늦은 밤에 확인을 못했다면 어미도 잃고 새끼도 잃을 뻔 했던 아찔한 사고였지만,
절뚝거리는 암컷의 깊은 모성애 때문에 최악의 경우는 면했습니다.

회원님들도 새장에서는 언제든 이처럼 예기치 못한 일도 발생할 수 있으니 늘 주의깊게 관찰하시는 게
필요할 듯 하여 사고의 내막을 자세히 전해드렸습니다.

암컷의 다리가 빨리 완쾌돼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Comments

조충현 2008.04.07 12:40
  고비를 넘겼네요.
기르다보면 별별 예상치 못한일로 사고를 경험했습니다.
몇일 지나면 회복 되겠지요.
정효식 2008.04.07 13:26
  갱상도 말로 "시껍햇겠심더" 이군요.
다리를 절며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새끼들도 건강하기 바랍니다.
어수언 2008.04.07 14:19
  하마터면 아까운 생명을 잃을뻔 헀네요.
그래도 육추를 한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용환준 2008.04.07 14:53
  큰일 날뻔 했군요.
다키워 놓은 새끼들을...... 이제 먹인다니 다행입니다.
전신권 2008.04.07 16:08
  참으로 안타까운 경험을 하셨네요.

이런 저런 아픔을 이겨내며 번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삶의 여정과도 같음을 경험해 봅니다. 부디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박수정 2008.04.07 18:24
  암컷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글을 보니 느껴지네요..더불어 정병각님 마음도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안타까워했을지 그려집니다..
발목링이란게 참..새를 잡는군요.. 있어서 좋은것도 많겠지만 나쁜것도 알게 되어서 울집의 홍시연시의 미래의 2세에겐 끼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링 끼우는 시점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을 시의 불상사? 라든가..
홍상호 2008.04.07 19:10
  하여튼 다행입니다...
새를 기르다 보면 오만가지 에피소드가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암컷이 더욱 애정을 갖고 더 잘 키워 줬으면 좋겠네요..
김성기 2008.04.07 20:55
  다행입니다.
일찍 발견 했으니 망정이지....
애써 노력했던 보람이 일순간에 날아갈 뻔 했군요~

새끼 키우는게 남의일 같지 않습니다.
원영환 2008.04.07 21:12
  일찍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자칫 새장을 둘러보질않고 주무셨더라면 아마도 암컷은 죽었을겁니다.

암컷이 회복하여 새끼들을 돌본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김익곤 2008.04.07 21:37
  하마트면 큰일 나실뻔 하셨습니다.
외출후 확인해보시길 참으로 다행입니다.
별의별 생각치도 못한 사고가다 생기는군요
암컷이 다시 먹여준다니 한시름 놓으셨겠습니다.
홍나겸 2008.04.07 22:39
 
김성기님 말씀처럼 남의일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발상과 새들의 생활은 너무도 관계가 없을때가 많더라구요...

암컷이 하루빨리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정병각 2008.04.08 07:06
  어제 저녁 퇴근해서 지켜보니
암컷이 다소 절뚝거리긴 해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고
수컷도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더군요.
하루이틀 지나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습니다.
많이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태 2008.04.08 17:18
  정병각님,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저도 작년에 이소한 새끼 한 마리가 정말 생각치도 않은 곳에 다리가 끼어서(링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답니다.

좋은 녀석이었는데, 할 수 없이 안락사 시켰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다행히 잘 낫고 새끼들도 건사한다니 참으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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