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여자의 일생

김두호 5 568 2003.11.14 12:19
여자의 일생 <퍼옴>

내 나이 5살
오늘도 할머니는 나를 쥐어박는다.
"가시나가" "멀 그리 먹을라 카노"
내가 악을 쓰고 울자 우리 엄만 날 꼭 안아주신다...
" 흥 " 할머니도 여자면서. 같은 여자인 날 미워하다니...
난 할머니가 싫다 .
이번에는 엄마가 아들을 꼭 낳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아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내 나이 18세
오늘은 데이트...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
일곱시까지 들어오면 안걸리겠지.
창규녀석.... 쫌 고급스런 음식점에 데려가지...
맨날 떡볶이 집이다 ..
남자친구를 갈아치우던지 해야지..
능력이 부족하면 외모라도 바쳐주던가..
에구 빨리 집에 가야겠다.. 언니 올 시간이네.
살금살금 들어오는 나를 팔짱끼고 내려다보고 있다.
움찔, 넘 놀라 오줌 쌀 뻔했다.
누가 딸 부잣집 셋째 딸은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 했는지...
지금 언니의 모습은 성난 살모사 같다.
날 보더니 대뜸 손을 올린다.
또 한번 움찔 .
언니는 움찔거리는 내가 웃겼는지 이번 한번만 봐준다며 따라 들어오란다.
아휴 다행이다. 근데 골방으로 데려가는 이유는 뭘까?
남자친구 한테 차인걸까,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린다.
" 은희야 너 공부 열심히 해 "
" 언니처럼 상고가지말구 "
이놈이 의사랍시고 우리언니를 속상하게 했겠다.
형부감으로 내가 점찍어 놨었는데 ... 넌 땡이야!

내 나이 26세
우리 셋째 언니 결혼식 날 ....
반대하는 결혼하지 말지..
신랑측은 썰렁하다... 우리언니가 어때서
상고 다니면서 장학금 쭉 타고.. 자격증이 다섯 개에 ..
돈도 얼마나 많이 벌어 놨는데 ..
우리언니가 더 아까운걸...
난 절대로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나이 28세
창규가 프로포즈를 한다.
잘해주겠다는데.... 어쩌지
나도 나이도 있고 그냥 창규랑 결혼할까?
코 찔찔 흘리던 놈이 .... 내 남편 ...

내 나이 35세
미역국도 지겹다.
이번엔 태몽도 아들이었는데....
내일 바로 퇴원해야겠다.
애들 눈치 밥은 안주시겠지..
시어머니 뵐 면목이 없다.
남편이란 놈은 마누라가 애를 놓는데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잘해주겠다더니 정말 사기 결혼이다..
옆에 새댁은 남편이 준 장미꽃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새댁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난다.
처녀 땐 곧잘 꽃 선물도 하더니...
벌써 권태기인가...

내 나이 38세
뚝 ---- 팬티 고무줄이 끊어졌다....
살이 쪄서 그런가?
다 낡은 팬티를 보니 눈물이 난다.
우리엄마 다 떨어져 가는 팬티 꿰매 입는 모습이 정말 싫었는데..
왜 그렇게 사냐고 하면 너그러운 미소지으시며..
" 아휴 너도 살아봐라 " 그러시더니
다섯 딸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엄마가 보고싶다 ..... 우리엄마 ... 가.....

내 나이 44세
남편이 술에 쪄들어 들어왔다.
내가 잔소리를 하니,
아들도 못 놓으면서 말이 많다고 한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쥐꼬리만한 월급..
이리저리 메꾸다 보면 김치만으로 밥 먹는 날이 허다한데...
떡볶이 집만 데려갈 때 끝냈어야 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 겠다..
당장 카드로 근사한 봄옷 한 벌 사야지...
맨날 우중충하게 입으니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거 같다.
모두들 너무 화사한게 이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괜찮다 싶은 옷은 몇 십만 원이니...
그냥 애들 티나 사가야겠다..

내 나이 49세
딸년이 바락바락 대든다.
대학도 못 보내주면서 왜 낳았냐고..
가슴이 에어 온다.
내 마음을 알까 ...?
나를 팔아서라도 달러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고 싶은 내 맘을 알까..
바락바락 대들더니 휙 집을 나가버린다...
날씨도 추운데...
티 쪼가리 하나입고 어딜 갔는지... 찾아 나서야겠다.

내 나이 55세
사윗감이 인사를 왔다..
어디서 저런 놈을 데려왔는지 기가 막히다.
딸년은 좋다고 입이 귀에 걸렸다.
내가 보기엔 고생길이 훤하구만 ...
가만히 있으면 밉지나 않지.. 잘 살거란다..
엄마처럼 안 살 자신 있다네///
이년아 한번 살아봐라, 세상살이 맘대로 되는지 ...
홀 시어머니만 아니어도 괜찮으련만..
그래도 저렇게 좋다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이럴 때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딸년 손이라도 잡아주고 가지...

내 나이 63세
엄마처럼 안 살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
눈이 시퍼렇게 되어서 왔다..
그래도 난 맞지는 않고 살았는데..
에이구 이년아 왜 결혼 안 말렸냔 말이 입에서 나오냐..
요놈의 이서방 오기만 해봐라 ...
눈을 똑같이 만들어 놓아야지.

내 나이 78세
요즘은 먼저간 영감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같이 있자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잘 해주겠며......
내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준다..

이놈의 영감탱이 ...
이번 한번만 더 속아주리다...

Comments

김혜진 2003.11.14 12:36
  눈물 날 정도로 리얼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김혜진 2003.11.14 16:25
  왠지 어머니생각이 나게 합니다.
이기형 2003.11.14 16:52
  여자에일생도 눈물없이는 못보겠군요.
하지만 남자에일생도 화려하지만 않아요. 생각하면 남.여에 일생모두가 만만하지않아요.
다들 그렇게 돌고도는것 아닌가요?
강병문 2003.11.14 17:49
  좋은글이군요! 근데 요즘엔 저렇지 않죠 ;
학교에서도 여학생들 보면 아주 엉망이랍니다 ;
권영우 2003.11.14 17:59
  인생이라는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평균적으로 비슷비슷한 것이 아닌가요?
어머니 세대의 인생 같습니다.

지금은 아니죠?.... 그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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