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대한민국 남편들아 쇼핑 함께 가라

박동준 5 539 2006.02.25 07:53
끌려가는 '소'가 될지라도…이것저것 골라도 웃어줘라 같이 장보기는 사랑 확인 작업

"옷이 하나도 없어."

없다니. 그게 무슨 줄기세포 같은 말씀인가. 옷장에 가득한 게 다 제 옷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초보 남편이다.

"옷이 많으면 뭐해. 오늘 입고 나갈 산뜻하고 근사한 새 옷이 없는걸." 경력 18년차 남편이라면 이렇게 알아듣고 발딱 일어나 쇼핑 따라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지만 나는 아내 따라 쇼핑 가는 일이 싫다.

그렇다고 내가 아내에게 반항하는 나쁜 남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아내가 시키면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다.
나는 설거지에서 취미를 찾고 걸레질에서 보람을 발견한다.
아내가 시키지 않아도 베란다로 나가 재활용쓰레기를 분리하거나 음식물쓰레기를 내다버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쇼핑 따라가는 것은 정말 싫다.

끌려가는 소의 눈을 하고 끔벅끔벅 아내 따라 집을 나선다. 나는 도살장 같은 백화점에서 10분만 지나면 현기증이 나고 식은땀을 흘린다.
반면 아내는 백화점에 들어서는 순간 원기충전 모드로 급속 전환한다.
생기발랄 아내가 여러 매장을 들락거리며 옷을 고르는 동안 지리멸렬 남편은 매장 밖 통로에 서서 '과연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한다.
남자는 지리멸렬하면 누구라도 철학자가 된다.

"어느 게 좋아?"

남편이 철학자가 되거나 말거나 아내는 양손에 각각 옷을 들고 서서 나를 보며 수줍게 웃는다.
아내가 웃는 얼굴로 남편을 바라볼 때는 쇼핑할 때뿐인지 모른다.

"둘 다 좋아."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 그저 귀찮으니까."

그래. 귀찮아! 귀찮아 미치겠어! 귀찮아 하는 거 알면서 대체 왜 나를 끌고 다니는 거야! 나는 백화점이 무너져라 소리치고 싶지만 가까스로 참는다.
그리고 아내를 향해 힘껏 웃어준다.

"귀찮긴. 뭘 입어도 예쁘니까 그렇지."

"거짓말."

들고 있던 옷을 돌려주고 매장을 나온 아내는 몇 군데 더 돌아다닌다. 백화점에 있는 옷은 모두 아내 때문에 디자인이 안 좋거나 가격이 비싼 옷이 되고 만다.
아내는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나도 입어보지 않고 몸에 대보기만 한다. 어서 이 쇼핑이 끝나기만 바라는 내가 제발 한번 입어보라고 하품의 눈물로 호소하면 그제야 입어본다.
조금 작은 듯한 옷을 입고 탈의실에서 나온 아내는 역시 수줍게 웃는다.

"나 너무 살쪘지? 이런 옷 입기엔 너무 늙었지?"

이럴 때 정직은 최악의 정책이다. "아냐, 잘 어울려. 살은 무슨 살. 아가씨 같은데, 뭐."

내 호들갑에도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탈의실로 들어간다. 반나절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아내는 자신의 옷을 하나도 사지 못했다.

산 것이라고는 아이들 옷과 내 옷뿐이다. 그런데도 백화점을 나서는 아내의 기분은 좋아보인다.
다음주면 다시 옷장 앞에서 "옷이 하나도 없어"라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지만.

"아내가 싫어하지 않는 한 쇼핑은 함께 가도록 하라. 오랜 시간 까다롭게 물건을 고르더라도 계속 웃어주고 설령 무거운 물건이 아니더라도 들어줘라.
아내에게 남편과의 쇼핑은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다." -

'대한민국 유부남 헌장'중에서
                                                                                            - 퍼 온 글 -

Comments

권영우 2006.02.25 10:13
  실감이 나는군요.
아내들은 쇼핑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나 봅니다.
저는 가끔 함께 가보면 지루하고 따분하던데......
류청 2006.02.25 11:10
  쇼핑을 하실때에는 여자분이 남자분보다
20~30분정도 빨리 쇼핑을 하시면
문밖으로 나가실때에는 웃으면서 나오신다더군요^^*
곽진환 2006.02.25 16:45
  오늘 쇼핑하고 왔읍니다....
집사람 화장품이랑 애들 노트산다고 가서 책과 노트,반찬만 샀읍니다....
지금은 피곤한지 자고있네요....
항상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박상태 2006.02.26 02:18
  정말 마음에 와닿는 글입니다.. ㅎㅎㅎ

정말 잘해줘야겠네요...
홍지연 2006.03.04 17:43
  처음 몇년은 같이 쇼핑하는게 좋더니만,,요즘에는 터득했습니다.
딸내미(9세)랑 둘이 쇼핑다니고, 끝날때쯤 전화합니다.
남편 도착하면 얘기하죠,
"자기 옷 하나 살까?" 그럼, 우리남편 끌리는듯, 안끌리는듯 하면서 남성복 매장으로 갑니다.
50%의 확률로 옷을 하나 사들고올때도 있지만, 50%의 확률로 그냥 올때도 있지요 ^^
그런날은 매우 행복한 쇼핑을 한날입니다.
10년차가 되니, 제아래 년수의 주부들에게 충고도 하게 되더군요.
"쇼핑 다 해갈때쯤 어디어디서 만나자고 해봐. 싸울일이 줄어들어."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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