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내 세탁기는 55분을 돈다....

성일현 2 670 2003.10.16 10:10
이른 아침 일어나 밀려둔 빨래를 한다.

아무렇게나 입다 버린 츄리닝..둘둘 말아져 있는 양말들..한구석에 널부러져 있는 팬티..
뱀 허물벗듯이 예쁘게 벗어놓은 청바지...

빨랫감은 밀리지 말고 그때그때 손빨래 하려 생각하지만
쌓이는 생각만큼 빨래는 그렇게 쌓여만 간다.

하나하나 세탁기 통속에 집어 넣으며
빨래 하지 않고 살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지만...
햇볕에 잘 마른 빨래를 걷을때의 까실까실한 감촉을 잊을 수는 없다.

버튼하나 꾹 누르니 세탁기는 내게 55분 기다리라 말을 한다.

"천천히 기다리소..."
" 내 얼른 당신의 수고를 덜어줄테니 ....
" 그 사이 당신이 뭘하든 무슨 짓을 하든 시비걸지 않을테니..."

"나 ..딴짓 안한다..얌전히 청소나 하마,,,,
" 이상한 눈길로 날 바라보지마...."


세탁기가 돌고 도는동안 난 청소를 한다.

창문 모두 열고, 이불 햇볕에 널고...
청소기로 집안 먼지 다 빨아들이고.
방 한구석에 말라 비틀어져 있는 걸레를 찬물에 휘휘빨아
구석구석을 훔치고 훔치고 또 훔친다.

오랜만에 하는 청소라 재미도 나고 ..
그야말로 "룰루랄라"다.
휘파람 불며 어깨춤을 들썩이며..

시간이 흐른다..
세탁기는 내게 45분이 흘렀다고 말한다.

10분이다.
할일없는 10분이다.
뭘할까?
생각을 하자..

진정으로 나에 대해 생각을 하자.

하루해가 길지도 않지만 그래도 짧지는 않아
늘 시간은 있다지만
가만히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아침 첫번째 햇볕을 기다리며
달콤한 커피를 마실때는
그 향에 그 맛에 마음을 빼앗겨 몽롱해지고.....

늦은 저녁 나 홀로 산책을 할때는
불어오는 바람에 누런 들판에
저물어 가는 노을빛에 마음을 빼앗겨 아득해지고...

바쁜 일상속에 살아갈때는
복잡하고 어지럽고 머리 아픈 일에
마음을 빼앗겨 절로 심란해지고...

나를 생각할 시간은 없다.

10분......................

때에 찌들었던 내 빨래들은 세탁기 속에서 또 한번의 변신을 한다.

깨끗하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내가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 물빨래 된다면
깨끗하고 향기로와 질수 있을까?

그럼 나를 빨래 한물은 어떤 색일까?
검정색?  하얀색?

그 물에 걸레를 휘휘 빨수 있으려나?

Comments

Web Master 2003.10.16 12:56
  성일현님, 오랫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조금 알 듯 합니다...하하하.. 바쁘시죠?"

이번 전시회에 성일현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혹시 ㄱㅏ능하실지.....
김혜진 2003.10.16 17:24
  정말 오랜만에 성일현님의 글을 뵙내요.^^
하시는 일은 잘되시는지.....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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