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겨울생각......

정병각 5 703 2006.09.12 17:30

그대여,
찌뿌드드한 하늘이 이틀째 머리끝에 머물고 있습니다.
간혹 대지를 향해 흩어지는 빗방울도 전에 없이 찬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 푸른 창공을 오래도록 뒤덮고 있는 저 하늘과
계절을 재촉하는 빗방울 잦아들고 나면
땅 줄기엔 금방 냉기가 서리고
그 위에 선 나무들도 서서히 한해를 마무리하며
울긋불긋 찬란한 향연을 시작하겠지요.
그러면, 간이역을 출발한 열차가 속도를 내듯
계절은 성큼성큼 겨울로 달려갈테고
추수를 끝낸 들녘 농부들도 서둘러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겠지요.

이런 날이면 무릇무릇 고향생각이 떠오르곤 해요.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강원도 두메산골이.
그 때만해도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때 되면 찾아오는 겨울은 사람들에게 큰 걱정거리일 뿐
그리 달가운 상대는 아니었으니.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해 
한 접 두 접씩 집집마다 김장을 해야 했고,
아버진 산자락 오르내리며
겨우내 때야할 장작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셨죠.
뒤꼍 울타리를 따라 잘 쪼개진 장작더미가 가득 찰 때쯤에야
아버지 그 분의 손에 쥐어진 무뎌진 도끼자루는
기인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요.
 
어머닌 밤마다 등잔불 밑에서
못 쓰게 된 털실들을 모아 뜨개질을 하셨고,
처마 끝에 매달린 새끼줄엔
김장 때 남은 시래기들이 가느다란 겨울 볕을 쬐며
조금씩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었죠.
 
그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 겨울풍경이었지요.

하지만 철없던 우리들은 어머니 아버지 그  속내도 모르고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무작정 신이 났었죠.

눈은 또 왜 그리도 많이 내렸는지 몰라요.
가끔씩 폭설이 몰아칠 땐
얼어붙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밤나무 가지들이
뚜욱-뚝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요.
아침에 잠깨어 밖으로 나가보면
장독대며 울타리, 외양간 지붕 위로
하얀 눈이 온통 두텁게 쌓여 있었죠.
간간이 삼판 트럭이 내달리던 마을 앞 한길까지 눈을 치우려면
아마도 한나절은 걸렸을 거에요.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은
겨울을 맞은 우리들 조그마한 학교로 장작을 한 지게씩 지어 날라주셨고,
몇 안 되는 어린 학생들 모여 앉은 교실 한가운덴
장작불 난로가 활활 타오르며 양은 도시락 몇 개를 훈훈히 데우고 있었죠.
그렇게 시작된 산골짝 작은 마을의 겨울은 오래도록 머물곤 했죠.

사랑방 윗목 구석 둥그렇게 세워진 싸리나무 발 속에 가득 찬 고구마는
과자 한번 구경할 수 없는 우리 형제들의 소중한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고,
긴 송곳으로 바짝 마른 옥수수 낱알을 타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쯤이면
그토록 기다리던 설이 가까웠음을 느끼곤 했어요.
그 옥수수 낱알 한 됫박은
돌아오는 읍내 장날 어머니 손에 들려 나갈 테고,
저물녘이면 한 자루 가득한 강정이 되어
목을 빼고 기다리던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요.
정말 오래 전 겨울날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지요.

그 어린 날의 겨울은
울밑에 수북했던 눈 더미가 마당을 적시며 녹아 내리고,
광 속 깊숙이 들어있던 아버지의 쟁기들이 다시 마당으로 나올 때쯤에야
주섬주섬 몸 추스리며 저 멀리로 달아나곤 했지요.
 
우울한 하늘이 하루종일 머물고 있는 가을날의 오후
그대는 어떤 추억 떠올리며 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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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과 함께 편집한 파일이 용량과다로 첨부가 안되네요.
사진 두장만 첨부합니다.

Comments

권영우 2006.09.12 18:19
  어려웠던 시절이군요.
놀이는 몸과 자연을 이용한 놀이가 대부분....
말뚝밖기와 뻥튀기 사진도 낯설지 않네요.
부족했지만 마음은 풍요스럽던 시절이었답니다.
박희찬 2006.09.12 19:11
  그시절의 추억이 그리운건 아마도 정이 듬뿍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귀한사진과 자료 감사합니다. ^^
최철훈 2006.09.12 21:58
  역시 추억을 되살리는 사진은 흑백인가 봅니다.
카나리아를 키우는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겠지요...
특히 마음에 드는 새를 만나 키운다면..^^
송인환 2006.09.13 01:00
  70년대초의 기억이 떠오르는 모습들 입니다.
다시 돌아볼수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정연석 2006.09.13 02:56
  참 좋은 글입니다...
글을 읽고있으니 정병각님의 어린시절이 눈앞에 펼쳐지는듯 합니다...

저는 겨울보다는 카나리아의 번식기인 내년 봄 생각을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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