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아버님을 생각하며 쓴 詩 한편 올립니다

정병각 5 690 2006.11.04 12:43
※ 이제는 돌아가시고 곁에 계시지 않는 아버님을 생각하며 지은 詩입니다.
아버님은 항상 저를 굳건히 이끌며 키워주셨지요. 마치 창공을 씩씩하게 날고 있는 방패연처럼 말입니다.
지나간 오랜 세월 그처럼 저를 이끌어 주시던 아버님은 2년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가셨고,
지금 그 자리엔 제가 또다시 방패연처럼 날며 어린 아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詩 -------------------------------------------------------------------------------------------

                                          연(鳶)
                                                                                      정 병 각

오래도록 나를 잡아끌던 연이 하나 있었어 활처럼 팽팽히 머릿줄 동여맨 한가운데
동그란 방구멍 하나 뻥 뚫린 커다란 방패연 상공의 세찬 바람 온 몸으로 받아 내며
그는 엄청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지 강물을 거슬러 상류로 상류로 힘차게 오르는
연어처럼 바람을 헤집고 높게 높게 창공으로 솟아올랐지  “얼레를 꽉 잡고 힘 조절
을 잘해야 해”  난 그가 당길 때마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맞섰고  얼레의 실을 감
았다 풀어주기를 오래도록 반복하고 있었어 아, 그 때였어 핑! 하는 바람소리와 함
께 갑자기 허공에서 그가 올챙이처럼 흐늘거리는 거야  마치, 붉은 빛깔 바람난 연
어가 가슴 가득 품어 둔 사랑의 씨앗을 좌르르 쏟아 내고  강바닥에 널브러져 버리
듯 한 순간 그는 수직으로 너울대며 고꾸라졌고  팽팽하던 줄은  삽시간에  맥없이
풀어져 버렸지  “실이 끊어진 거야”  추락한 연은 저수지 건너 장승처럼 버티고 선
밤나무 끝에 걸렸고  빈 얼레만 우두커니 잡고 선 손바닥에선  얼얼한 바람소리가
들렸지 눈물이 핑 돌았어

영안실 바닥은 차가웠어  낡은 형광등 불빛은 침침했지  흰 가운에 장갑 낀 남자가
서랍을 열고  그의 시동 꺼진 육신을 시상(屍床) 위로 꺼냈지  끈을 놓친 그의 표정
은 편안했어 “끈을 붙들고 있기가 너무 힘겨웠던 게야” 복받친 어머니 음성이 귓전
을 바람처럼 스쳤어  알코올로 닦아 내는 그의 얼굴은  햇살이 비추지 않아도 내내
하얗게 빛났지

내가 연을 날리던 언덕에서
오늘은 내 아들이 연을 날리고 있어
내가 갖고 있던
활처럼 팽팽히 머릿줄 동여맨
가운데 동그란 방구멍 하나 뻥 뚫린
그날의 연을 닮은,   
아들의 손에 들린 육모얼레에 매달려
오늘은 내가 연이 되어 날고 있는 거야
저 창공에서

Comments

유재구 2006.11.04 13:36
  가슴을 울리는 내용입니다.
정말 지난 일이, 그리고 오늘이 내일로 전개 됨에
다시금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합니다.
장근호 2006.11.04 14:29
  심금을 울립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연상케 만드는 군요
권영우 2006.11.04 20:20
  마음이 찡해 오네요.
늙으셨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이 행복합니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함이 송구스러울 뿐이랍니다.
김두호 2006.11.05 02:55
  모두가 거쳐야 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누구나 가지는 동심과 부모와 연결된 고리가 좋습니다.
이응수 2006.11.05 09:09
  정병각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버님에 대한 깊은 생각에 동감하면서
 내내 잊혀지지 않은 면면만 남는것은 자식의 한도 없는 공간의 좋은 추억이라 짧은 생각
 함께 하면서 그 좋았던 많은 기역으로 새 삶의 밑돌이 되는 더 좋은 기회였으면...
 좋은 아침에 좋은 글 읽으면서 병각님!! 새로운 삶을 깨우쳐 주어서 퍽 감사합니다. 
 대전 왕 초보 드림!!!  추인; 아래로 흐르는 이종택님의음악 "철새는 날아가고" 참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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