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詩/ 그 여자

정병각 9 763 2007.02.01 08:05
※2월의 첫 날, 카사모 주필에 오르신 김갑종 선배님을 축하드리며
지난 날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 한편 올립니다.



                                          그  女  子

                                                                                                                          정 병 각

십여 년은 흘렀네 그 여자,  전화통에 매달려 다짜고짜 만나자고 잠 깨우던 봄 제 할 말만 재잘거리곤
시간 장소 전하고 뚝- 수화기를 내려놓던  성도 이름도 알 수 없던 여자 가랑잎 같은 몸매 옥수수수염
닮은 파마머리 나풀거리며 레스토랑 탁자 앞에  턱- 걸음을 멈춰 서던 여자

하얀 이마에 알 수 없는 미소 감추던 여자  어둠이 수북한 강둑 늙은 미루나무 아래서  푸른 달빛 출렁
이는 강물을  잘도 바라보던 여자 한 아름 약봉지 가슴에 끌어안고  세브란스병원 하얀 담벼락에 기대
어 쓴 눈물 같은  시 몇 구절 부쳐오곤 하던 여자  그  후로- 뚝, 연락을 끊어버려  기다리는 마음 더욱
애타게 하던 정말 알 수 없는 여자 정말 야속했던 여자

그 여자 잘도 바라보던 강물처럼 훌쩍 오륙 년이 흐른 어느 봄 그날처럼 전화통 붙잡고 불쑥, “잘 살고
계십니꺼?” 물어 오며 나를 놀라게 했던 여자 여전히 애잔한 음성이던  멀지 않은 곳에 산다던 나처럼
어린 딸 하나 두었다던 변함없이 파마머리 나풀거리던 가랑잎을 닮아 내내 잊혀지지 않던 여자

서너 달이 훌쩍 지났네 그 여자, 링거 줄에 하얗게 매달려 풀잎처럼 그렇게 혼자 가노라던 그 낯선 가을

Comments

전신권 2007.02.01 09:30
  갑자기 몰아친 한파처럼 싸한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이 달에는 어떤 모습으로 활약이 전개될지 기대가 됩니다.
정효식 2007.02.01 09:58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꼭 내 곁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대에 잠을 자고 그리고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함께 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며 연정인가 봅니다.
박상태 2007.02.01 11:47
  서정적이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수성이 대단하시네요.^^
홍상호 2007.02.01 11:55
  정병각님의 시를 감상하고
감자기 그 여자가 생각 나네요...

        아~ 그 여자.....

총각때 부산 광안리에서 함께 거닐었던 그.여.자~~
생각납니다...그/여/자...아~  그 낯선 겨울!!
김혁준 2007.02.01 13:18
  그런 경험도 있었죠.. 근데 사진에 있는 분도 이쁘시네요.. 뉘신지 궁금^^
김갑종 2007.02.01 19:52
  세브란스 하얀 담벼락에 기대어 쓴 낙서 하나
틈새
살틈새
몽당연필,아인슈타인,상대성원리,만유인력
빨개 벗은 시인

주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온데 좋은 시까지 ...
요셉병동의 링거 줄에 하얗게 메달린 기분입니다.
김성기 2007.02.02 02:05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죠?
너무 어려운 숙제를 내주십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 대한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겨울의 찬공기가 밤을 가르는 지금 이시간에도.....
권영우 2007.02.02 17:50
  저도 그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
한참은 잊고 잘 지냈는데....
가슴 깊이 감추어진 사연을 끌어내신
김갑종님과 정병각님이 책임지십시오.
정병각 2007.02.03 17:49
  누구든 아련한 추억들이 있으시겠죠.....

"누구나 그 여자에 대한 추억을
가슴 속 깊이 감추며 산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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