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모정담란

촌년 10만원

홍상호 3 722 2008.04.16 08:38
밖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아침공기가 꽤나 무겁습니다..
회사 내 인트라넷에 현장사원이 올린 글인데 한번 참고하시길...(사진은 요즘 시나몬 암컷과 열심히 작업중인 블루 숫놈입니다 알을 5개 낳았네요 ^^!)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판사 아들을 키워 낸 노모는 밥 한끼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듯 해 남 부러울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했으나 이 날 따라 아들만큼이나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잣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 노모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가 없어 집안 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가계부다. 부잣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해 들여다 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료비 등 촘촘히 써 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 조목 나열한 지출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 10만원’이란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지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 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 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 노모 머릿속에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들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 모르고 이고 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이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 듯 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삭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금지옥엽 판사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는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응어리를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이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꼭데기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며 수화기를 내팽개치듯 끊어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집에서 큰소리 난다 소문이 날 것 같고, 한 대 때리자니 판사의 양심이 허락 않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해 몆 날 며칠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의 친정나들이를 뒤로 미뤘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 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 나 선물 보따리며 오갖 채비를 다 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때 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보따리를 모두 챙겨 집안으로 들여 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우리 판사사위 왜 안 들어 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어떻게 부잣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다음 달 부터는 촌년 10만원은 간데 없고 ‘시어머니 50만원’ 이란 항목이 가계부에 자리했다.

Comments

강현빈 2008.04.16 08:54
  이런 현상이 어디 오늘 내일 이었습니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있지 않을까요
다만 위치와 등장인물이 다를뿐...
우울해지는 아침입니다...
전신권 2008.04.16 10:09
  그래도 희망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게드리우듯이...

저는 아무리 그래도 긍정의 힘을 믿고 살아 가고자 합니다.

비록 유정란 비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고

태어난 유조들도 반도 살리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응수 2008.04.16 15:27
  양질의 부모님밑에 저질의 딸이 꼭 끼워져있고***
무겁고 긴 터널지난 어머니의 숨은 공로는 어디에도
 찾을길이 먼 우리네 현실을 나는 사랑<?>합니다.
누가 뭐라한들 그 어머니는 어머니일뿐!!!
아들도 며느리도 원망 해 본적은 내일도 없을테니까^^
세상이 비겁한건지 내가 몰락한것인지 아직은 몰라도
엄마의 마음은 그래도 내일을 바라만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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